[예술인 복지, 어디까지 왔나]예술가는 배고프다.. 66.5%가 한 달에 100만원도 못 벌어

김종목 기자 2013. 10. 15.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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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절박한 생존 노동

문화예술인들이 생존 위기에 놓여 있다. 창작만으로 먹고살기 힘든 형편이다. 작가 최고은씨의 죽음 이후 제정된 예술인복지법은 이들의 생활고를 해결하기에 역부족이다. 다음달 법시행 1년을 앞두고 예술인 복지의 현황과 향후 정책 방향을 3회에 걸쳐 짚어본다.

2011년 6월 장기투쟁 농성장이나 집회현장에서 전업 영상활동가로 일하던 이상현씨(당시 48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이씨는 월세 35만원이 밀려 있었다. 죽기 얼마 전 "당장 먹을 쌀이 없다"는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이씨의 동료 프로듀서 ㅇ씨는 "지인들에게 1만원만 빌려달라던 e메일을 보낸 게 지금도 기억난다. 죽었다는 소식을 듣던 그날 새벽 펑펑 울었다"고 말했다. 2009년엔 기륭전자 파업현장에서 1300일 넘게 영상 촬영을 한 김천석씨(당시 40세)가 생활고로 힘겨워하다가 생을 마감했다. 동료들이 2012년 '현장카메라에게 힘을'이란 단체를 만들면서 이들의 죽음이 뒤늦게 알려졌다.

프로듀서 ㅇ씨는 동료들의 죽음은 현재 진행형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들이 찍은 영상이 공중파 뉴스의 자료 화면으로 쓰이곤 하죠. 말 없는 자들의 노동과 예술, 운동이 스며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적 공공재와 같은 이들의 예술과 노동은 여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씨가 죽기 5개월 전인 2011년 6월 작가 최고은씨(당시 32세)가 생활고 끝에 월세방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최씨의 죽음은 지난해 11월 일명 '최고은법'으로 불리는 예술인복지법 제정, 시행으로 이어졌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나도원 예술인소셜유니온 공동준비위원장은 "예술인복지법엔 고용보험이나 복지기금 활용 등 실질적인 지원 내용은 빠진 채 산재보험 적용만 있다. '최고은법'이라고 제정했는데 정작 최 작가는 산업재해로 사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예술인의 불안정한 노동과 수입, 불확실한 미래는 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 불안정한 노동창작만으로 생활하기 곤란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버텨

▲ 불안정한 수입예술인복지법 제정됐지만 기금 활용·고용보험 빠져

▲ 불확실한 미래경제적 고통·불평등한 계약 대부분이 마흔도 안돼 은퇴

이 같은 처지에 놓인 문화예술인들의 목소리를 듣는 건 어렵지 않다. 두 영상활동가나 최고은씨를 비롯해 문화예술인들이 겪는 고통의 핵심은 창작만으로 먹고살 수 없다는 것이다. 2001년 등단한 시인 ㅅ씨의 말이다. "한국에서 인세나 원고료 수입으로 법정 최저임금 이상을 벌어 생활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문인만 경험적으로 추정하자면 2~3% 정도일 겁니다. 저도 시집이 조금씩 팔리지만, 인세나 원고료만으로 살 수는 없어요. 출판사에서 일했던 때를 빼곤, 한달에 40만원 이상 벌어본 적이 없습니다." ㅅ씨는 다른 동료들도 사정은 비슷하다고 전한다. "출판사에서 교정이나 자료 정리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도 있고, 자괴감을 느끼면서 어쩔 수 없이 대필을 하는 친구도 있다"고 말했다.

어느 예술대학 교수 ㅇ씨의 말이다. "제자나 지인들을 보면, 연극인이 제일 힘들어요. 연출가는 1년에 많아야 3~4개 작품을 연출하는데, 교수 출신 A급 연출가가 편당 500만원 정도 간신히 받죠. A급이 1년 내내 일해도 연봉 2000만원이 안된다는 소리죠. 연극배우들은 말할 것도 없어요. 평균 1년 연봉이 500만원도 채 안될 겁니다."

예술인들의 처지는 몇년 사이 훨씬 열악해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10개 분야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지난 2월 발표한 '2012 문화예술인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월평균 수입 201만원 이상 비율은 2009년 20.2%에서 지난해 16.7%로 오히려 낮아졌다. 또 조사 대상자의 66.5%가 월평균 수입 100만원 이하로 나타났으며 50만원 이하도 25%나 됐다.

100만원 이하 문화예술인 비율은 문학(91.5%), 미술(79%), 사진(79%), 연극(74%), 영화(71%), 국악(67%), 무용(64%), 음악(60%), 대중예술(43.5%), 건축(34%) 순이다. 사진·국악 정도를 제외한 대부분 분야의 100만원 이하 비율이 2009년 같은 조사 때보다 늘었다. 아예 수입이 없다는 응답도 26.2%나 나왔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응답자의 91.7%가 문화예술활동의 경제적 보상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무용평론가 ㅊ씨의 전언은 문화예술인들의 경제적 고통과 함께 불평등한 계약 구조, 불안정한 미래를 보여준다. "젊은 무용수들은 거의 착취 수준으로 당합니다. 돈도 돈이지만, 사제지간이나 학맥 때문에 부르는 데는 다 가서 무대에 올라야 해요. 한달 이상 연습하고 하루이틀 공연하는데 편당 잘 받으면 100만원이에요. 12개 공연 뛰면 1200만원이죠. 50만원이나 아예 못 받는 사람도 있죠. 여자 무용수는 남자보다 '공급'이 많아 더 못받습니다. 계약서요? 위계질서가 워낙 강해 '감히 나에게 계약서를 들이대' 하는 거죠."

공연에 불려다니다 보면, 자기 정체성을 지키거나 창작의 힘을 발휘할 여지는 없다. 부수입을 얻으려면, 레슨을 하거나 중·고등학생들의 경연을 위한 안무도 짜줘야 한다. 충전 기간 없이 자신을 소모하다 보면 어느덧 30대 중후반이 지나고 만다. 다른 분야보다 빨리 은퇴에 직면하게 되지만, 무용이나 예술 관련 일을 지속하긴 힘들다. ㅊ씨는 "마흔 넘어 이 바닥에 남아 있는 사람은 드물다. 자영업을 하다 잘 안됐다고 하더라는 말만 간혹 듣곤 한다. 대부분 어디서 뭐 하는지 서로 잘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예술인복지법이 시행됐으나 계약 문제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무대에 서지 못하는 건 둘째치고 무용이나 예술 분야 일을 아예 할 수 없는 게 가장 절망적"이라고 했다.

문화예술인의 노동과 생존 문제는 이처럼 절박하지만, 해법은 복잡하다. 문화예술인을 어떻게 규정할지,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성'을 인정할지 등의 문제가 난마처럼 얽혀 있다. 또 청년실업, 비정규직 노동 문제와도 결부되어 있다. 일반인은 물론 문화예술인들조차 생존과 복지에 대한 절박성을 잘 느끼지 못한다. 나도원 위원장은 "아직까지도 선배란 사람들이 '예술은 원래 배고프다'는 소리를 유포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술인복지법은 창작활동 증진을 목적으로 지난해 11월 시행됐다. 그러나 고용보험이나 복지기금 활용은 빠졌고, 표준계약서는 보급만 명시해 관련 단체로부터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현재 이학재·박창식·길정우·최민희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이 국회 상임위에서 병합 심리 중이다.

<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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